2009년 08월 28일
진시황의 선택, 그 후
유교는 법을 기껏해봐야 "필요악" 정도로 여겼다. 현재 사회가 어지러운 것은 사람들이 "예"를 확립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했던 그들은 사람들에게 "예"를 가르치는 것이 진정한 해결책이고, 강제성을 가진 법은 임시방편일 뿐이라고 믿었다. 문제는 "예" 가 체계적으로 확립된 것이 아니라, 관습에 더 가까웠다는 것이다. 성선설을 믿었던 유교에서, "예"는 "사람이 착한 본성을 가지고 직관적으로 판단했을 때 옳은 행동" 정도로 아주 느슨하게 정의되어 있었다.
반면, 법가 사상은 영토 확장, 권력 유지가 유일한 목표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법은 인권이나 경제, 종교적인 의미를 내포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사람들을 복종시키게 만드는 수단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권력과 피에 목마른 폭군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어느 정도는 강력한 정부가 나라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유교의 주장
1. 성선설 (인간은 본성이 착하다)
2. 선한 ("예"를 지키는) 군주만이 백성의 지지와 사랑을 얻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강제성이 따르는 법은 폭군을 위한 것이다.
3. "예"는 오래전부터 현자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것이며, 이 세상의 이치와 인간의 본성과 조화를 이루는 조항들이다. 정치적인 목적만을 위해 만들어진 법과는 다른 점이다.
4. "예"는 부모와 자식, 부부, 친구, 왕과 신하 등 다양한 인간관계를 존중하는데 법은 그렇지 못하다.
5. "예"에는 미적이고 시적인 부분이 있다. 인간의 감정적인 면을 반영한다.
6. "예"는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유연성이 있어서, 언제나 같은 잣대만을 들이대는 법보다 우수하다.
7, 법은 법을 만든 사람보다 뛰어나지 못한데, 법이 사람 위에 군림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법가의 주장
1. 대부분의 사람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엄격한 처벌이 필요하다.
2. 군주는 당파 싸움과 차별대우를 막기 위해 법을 사람의 높낮이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
3. 자기가 멋대로 해석할 수 있는 유교와 달리, 법은 명확하게 군주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직시하게 해준다. 그러므로, 법을 토대로 세워진 나라가 더 안정되고 강할 수 밖에 없다.
4. 생존을 위한 경쟁이 더 치열해지는 역사의 흐름을 유교는 역주행하고 있다.
5. 도덕성에 대한 통일된 정의를 내려 주어야 나라가 부강해진다.
6. 사람은 양심만으로 착하게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법을 통해 당근과 채찍을 주어야 한다.
7. 법이 훌륭하면, 그 당시 지도자가 능력이 부족해도 법을 따르면 나라가 큰 피해를 받지 않는다.
8. 법이 아주 엄격하면, 사람들이 법을 잘 지킬 것이기 때문에 무거운 형벌을 내릴 일도 오히려 줄어든다.
현대인의 시각에서는 이 두 주장 모두 편협하기 그지없다. 유교에서 주장하는 "선한 정부"는 오늘날의 사회도 지향하는 것이지만, 혈연, 지연을 중시하는 풍토나 지위에 따라 법을 다르게 적용하는 것, 감정적으로 판단 하는 것 등은 오늘날 낙후된 정치 문화의 양상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반면 법가는 모든 이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법을 원했지만 이것은 결국 지도자의 군림을 위해서였지, 정녕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유교의 "선한 정부" 를 법가의 평등성과 결합시켰다면, 더욱 진보적인 법치 문화를 형성할 수 있을 터였다.
기원전 221년,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시켰을 때 그는 법가를 통치의 기반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가 사망한 이후, 유교를 지지하는 자들의 힘이 다시 강해지면서 중국의 법은 유가와 법가를 적당히 버무린 새로운 형태로 탄생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이 새로운 법치가 유가와 법가의 단점들만 모아놓았다는 것이다. 법은 철저히 군주가 권력 유지를 위해 백성을 탄압하는 용도로 사용되었고, 더불어 혈연, 지연에 따라 불평등하게 적용되었다. 중국법치 사상의 후퇴는 오늘날까지 그 잔재가 남아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거대한 것이었다.
# by | 2009/08/28 02:08 | 트랙백 | 덧글(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