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8월 16일
<지구온난화에 속지 마라>를 읽고
며칠 전 친구의 추천으로 프레드 싱어 (Fred Singer) 의 <지구 온난화에 속지 마라> 라는 책을 읽었다. 한글 번역본은 8월 5일에 출간된 따끈따끈한 책이지만, 영문으로는 무려 3년 전에 출판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칠 사이에 경향신문과 중앙일보에 소개 되는 등 우리나라에서 꽤 관심을 끌고 있다. 그만큼 한국에서는 아직 그의 아이디어가 신선하고 파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뜻이다.
Singer의 주장은 한마디로 말해서 지구온난화가 진행되고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인간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때문이 아니라 자연적 기후 변동 현상의 하나라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인류가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고 방관하고 있어도 된다는 주장을 펼치려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석유는 곧 고갈될 것이고, 대체 에너지를 찾는 일은 여전히 시급하다. 다만, 불가피한 자연 현상을 막으려고 노력하느니, 어차피 일어날 기후 변화를 어떻게 긍정적으로 이용하느냐를 연구하는게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이 책을 읽는 어떤 사람들은 더이상 지구온난화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홀가분해질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려면 어떤 국가든지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해야 하고, 우리나라도 요즘들어 "녹색성장"을 부쩍 자주 거론하는 상황이니 말이다. 한편 평소에 지구온난화에 많은 관심과 우려를 가져온 사람이라면 이 이론이 앨고어의 "불편한 진실"보다도 불편하게 느껴질 것이다. 평소에 도덕적 책임감을 느껴온 일이 내 책임이 아니라니, 갑자기 부도덕해지는 것같은 기분도 들고 말이다. (적어도 필자는 그렇게 느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에 대한 주장이 나에게 홀가분하냐 불편하냐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구온난화를 둘러싼 다음 세가지 의문에 대한 진실 뿐이다:
1. 지구온난화는 실제로 진행되고 있는가?
2. 진행되고 있다면 인류의 책임이 큰가?
3. 지구온난화가 지속되면 커다란 문제가 되는가?
진실은 하나 뿐이지만, 현재로서는 여러가지 주장들이 공존하고 있다. 전 세계 대부분의 환경/기후 학자들은 위의 세 질문에 모두 YES 라고 대답한다. Singer처럼 2나 3에 NO라고 대답하는 소수의 과학자들이 있고, 더욱 적지만 1에 NO라고 대답하는 사람들도 있다. 문제는 쟁점이 "진실"과는 점점 멀어지고, 오히려 정치나 경제적 이슈에만 치중한다는 것이다. 내가 논박하지 않은 반대론이 있는 한 내 의견은 절대적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Singer를 비롯한 많은 환경학자들은 다른이의 예측이 더 옳을 가능성은 철저하게 배제하고 있다. 과학적인 증거보다는 반대쪽의 도덕성에 대한 공격으로 승부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지구온난화에 경각심을 느껴야 한다고 하는 과학자들은 Singer쪽 사람들을 공격하기에 좀더 쉬운 입지에 있다. Singer의 책이 서점에서 더 잘 팔릴지는 몰라도, 과학계 내에서는 자기네들의 숫자가 훨씬 우세하기 때문이다. 또한, Singer처럼 지구온난화가 자연현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석유회사와 뒷거래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 딱 좋다. (실제로 Singer는 GE, GM, Ford, Exxon Mobil, Sun Oil, Shell등의 자동차 및 석유회사들의 컨설턴트로 지낸바 있다.) 저탄소 운동이 본격화되면, 가장 타격을 받는 곳은 당연히 석유와 자동차 기업들이다. 그래서 대기업들이 몇몇 과학자들을 고용해서 지구온난화에 대한 당연한 사실을 아직 의문이 남은것처럼 꾸미고 소비자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론도 꾸준히 들려온다. 저탄소운동을 뒤로 늦추고 지구온난화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수록 이런 기업들의 이익은 증가하기 때문이다. 미국내에서 석유/자동차업계의 막강한 권력을 고려한다면 그리 허무맹랑한 생각도 아닌 것 같긴 하다.
반면, 싱어같은 반대론자들에게도 작게나마 반격의 여지는 있다. 만약 지구온난화를 빌미로 전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제한한다면, 상대적으로 녹색산업을 많이 추진해온 선진국들에게는 타격이 적지만, 중국 및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에게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중국같은 나라들이 자꾸 차고 올라오는 시점에서, 선진국들이 자기 입지를 굳히기 위한 빌미로 "지구온난화 히스테리"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가끔 제기된다.
기후관련 지식이 전무한 나에게는 양측 의견 모두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결론적으로는, Singer가 훨씬 도덕성 면에서만큼은 입지가 약하다. 하지만 정말 극단적으로 생각해서, Singer가 정말로 석유 기업들과 한패라고 해도, 그의 책이 사회에 꼭 해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만일 Singer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당연히 인류의 대처 방안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에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만약 Singer의 주장이 거짓이라 해도, 다른 과학자들은 Singer를 논박할 수 있는 정당한 과학적 근거를 찾는 과정에서 자신의 주장이 더욱 굳건해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것이다.
흔히 사람은 자신이 도덕과 정의의 편에 섰을 때 "무오류의 독단"에 빠지기 쉽다. John Stuart Mill의 <자유론>에서 자세히 다루어지는 "무오류의 독단"이란, 자기 생각을 뒷받침할 필요나 반대론은 제대로 고려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나태한 상태이다. 무오류의 독단 때문에 소크라테스나 갈릴레오같은 사람들은 진리 탐구에 고난을 겪었고, 과거에 수많은 사람들이 종교에 이의를 제기했다가 핍박을 받았다. 그때보다 더 개방적인 오늘날의 사회에서도 무오류의 독단은 계속된다. Singer가 이 시대의 소크라테스든 거짓말쟁이든, 그는 자유토론의 자연스러운 산물임은 확실하며, 그의 생각은 최소한의 존중을 받을 가치는 있다. 그의 연구가 설사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여도, 사실을 배우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말이다.
# by | 2009/08/16 22:41 | Thoughts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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