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8월 18일
생태사회주의
생태정치학, 즉 ecopolitics는 상대적으로 어린 학문이다. 물론 서양에서는 조화를 강조하는 동양 사상을 보고 "친환경적"이라고 생각해왔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연구는 아직 미흡하기 짝이 없다. 서양에서도 생태정치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걸음마 단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이나 소로우의 은둔적인 삶이 떠오르지만 정확히 인간이 자연과 어떤 관계에 놓여져 있는지, 또 이에 따르는 정치적 그리고 사회적 의미는 무엇인지 깊게 파고든 철학자는 보기 드물다. 1980년대 후반에 미국과 유럽의 많은 젊은이들을 매혹시켰던 녹색정치(green politics)는 학문적 고찰보다는 운동세력의 사상에 가까웠다. (물론 녹색정치를 통해 각국에 녹색당(green party)이 생기고 이러한 당들이 상당한 정치적 힘을 휘둘렀던 것은 사실이다.) 요즘에 들어서야 Robyn Eckersley나 Elizabeth Bomberg, David Schlosberg 등의 학자들이 서양에서 배출되면서 주류에 속하는 자유주의 등을 통해 환경을 해석하려는 노력이 보여지고 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생태사회주의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물론 녹색정치의 기반이 생태사회주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유력한 녹색당원들 중 생태사회주의에 매혹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심지어 맑스주의를 상징하는 빨강과 환경을 상징하는 녹색을 결합해 "수박"이라는 별명까지 생길 정도이다.) 하지만 정치를 떠나 학문으로서의 정치학적인 관점에서 생태사회주의를 바라보았을 때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생태사회주의란
생태사회주의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딱 잘라서 정의를 논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합당한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는 사회주의와의 연관성을 밝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우선 사회주의가 생태에 관련된 문제들을 내면화하지 못했던 것은 그 시대에 생태가 쟁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대신 생산의 세가지 요소인 "땅, 노동, 자본" 중 "땅"을 자연과 동등시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맑스도 자연(땅)은 지배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여긴 것 같고 그 후에 온 사회주의자들 또한 자연(땅)을 지배해야만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한 가닥의 희망을 찾자면 엥겔즈의 "자연변증법"을 꼽을 수 있다. 여기서 엥겔즈는 "우리는 살과 뼈, 머리까지 포함하여 전적으로 자연에 속하는존재이며, 자연의 한가운데에 서있으며, 우리의 자연에 대한 지배의 본질이 모든 다른 피조물보다 우수하게 자연의 법칙을 인식하고이를 올바로 사용할 줄 아는 데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무튼 1980년대에 등장한 생태사회주의는 사회주의라는 패러다임을 통해 생태를 바라보았고, 이에 따른 결과물은 어느 정도 짐작을 할 수 있다. 바로 자본주의의 모순이 자연을 파괴시킨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노동력을 착취하고 식민지를 착취하듯이 자연도 착취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자연을 착취함으로서 자연과 근접한 관계에 있는 농민이나 이민자 또는 여성 등 소수 계층은 더욱 더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2) 생태사회주의적 대책
그렇다면 생태사회주의는 어떠한 대안을 제공하고 있는가? 사실 사회주의와 크게 다른 점은 없다. 한편으로는 자급자족을 강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중심주의를 견제한다. 또, 개인소유보다는 공유재산을, 교환가치보다는 사용가치를 중요시한다. 이렇게 보았을 때에는 사회주의와 별 다를 것이 없는 것 같고, 또 그것이 현실일 수도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생태를 보존하는 것이 사회주의를 보존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3) 문제점
가. 우선 생태사회주의에 따르면 자연은 노동력과 비슷하게 착취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연과 노동력은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대부분의 자원은 영구적이지 않으며 어떤 형태로든지 고갈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제대로 된 생태사회주의적인 정책이 펼쳐지려면 자연의 착취를 막아야 하는데 그럴 경우에 삶의 질이 급격히 낮아지게 된다. 지속가능한 정도로만 유지하겠다고 해도 석유와 같은 자원은 "지속"될 수 없으며 대체원을 찾아야 한다. 따라서 인간이 이용하는 모든 자원이 지속가능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이상적인 꿈인 것 같다.
나. 생태사회주의 뿐만 아니라 생태를 다루는 모든 이론의 문제점 중 하나는 생태와 인간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에 있다. 인간중심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생태사회주의와 사회주의의 구분은 희미해진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사회주의적 이상을 이루기 위해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에 따르면 사회주의적 이상과 관련이 없는 몇몇 형태의 자연파괴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자면 이론적으로 봤을 때 생태사회주의자들에게 오존층 파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자연중심적 측면에서 생태사회주의의 "사회주의"적인 면은 두각을 나타내기 힘들게 된다. 자연중심주의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분으로 보고, 사회주의적 이상을 통해 자연을 최대한 "자연적"으로 놔두려고 한다. 하지만 "자연적"인 것은 무엇이며 인간이 자연의 수호자가 아닌 일부분으로서 어떠한 역할을 해야하는지 분명치 않다.
4) 결론
이렇게 생태사회주의를 전반적으로 설명하게 되었다. 솔직히 생태사회주의라는 이론 자체는 매력적이다. 환경정의(environmental justice) 측면에서 보았을 때에도 환경파괴는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점들을 동반한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 및 방지하기 위해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은 귀를 솔깃하게 한다. 하지만 사실상 생태사회주의라는 이론을 따랐을 때 환경이 정말로 개선될 지는 의문이다. 사회주의가 항상 대면해야 했던 "동기부여"의 문제가 가장 돋보인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를 위해서라도 일할 동기를 부여하지 못하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환경을 위해 일할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까? 물론 공산주의처럼 붕괴하지는 않겠지만 사상적인 동기 없이는 환경을 위해 일할 동기가 없을 것이고, 사상적인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사회주의는 실패한 이념이 아니며 지금도 사회민주주의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우리 사회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복지 측면에서 사회주의는 자유주의에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주고 있다. 따라서 환경 문제에 있어서도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의 공통분모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환경이 파괴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정치적인 기반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이번 포스트에서는 생태사회주의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물론 녹색정치의 기반이 생태사회주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고, 유력한 녹색당원들 중 생태사회주의에 매혹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심지어 맑스주의를 상징하는 빨강과 환경을 상징하는 녹색을 결합해 "수박"이라는 별명까지 생길 정도이다.) 하지만 정치를 떠나 학문으로서의 정치학적인 관점에서 생태사회주의를 바라보았을 때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생태사회주의란
생태사회주의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에 딱 잘라서 정의를 논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합당한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는 사회주의와의 연관성을 밝히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우선 사회주의가 생태에 관련된 문제들을 내면화하지 못했던 것은 그 시대에 생태가 쟁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대신 생산의 세가지 요소인 "땅, 노동, 자본" 중 "땅"을 자연과 동등시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맑스도 자연(땅)은 지배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여긴 것 같고 그 후에 온 사회주의자들 또한 자연(땅)을 지배해야만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한 가닥의 희망을 찾자면 엥겔즈의 "자연변증법"을 꼽을 수 있다. 여기서 엥겔즈는 "우리는 살과 뼈, 머리까지 포함하여 전적으로 자연에 속하는존재이며, 자연의 한가운데에 서있으며, 우리의 자연에 대한 지배의 본질이 모든 다른 피조물보다 우수하게 자연의 법칙을 인식하고이를 올바로 사용할 줄 아는 데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무튼 1980년대에 등장한 생태사회주의는 사회주의라는 패러다임을 통해 생태를 바라보았고, 이에 따른 결과물은 어느 정도 짐작을 할 수 있다. 바로 자본주의의 모순이 자연을 파괴시킨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노동력을 착취하고 식민지를 착취하듯이 자연도 착취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자연을 착취함으로서 자연과 근접한 관계에 있는 농민이나 이민자 또는 여성 등 소수 계층은 더욱 더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2) 생태사회주의적 대책
그렇다면 생태사회주의는 어떠한 대안을 제공하고 있는가? 사실 사회주의와 크게 다른 점은 없다. 한편으로는 자급자족을 강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중심주의를 견제한다. 또, 개인소유보다는 공유재산을, 교환가치보다는 사용가치를 중요시한다. 이렇게 보았을 때에는 사회주의와 별 다를 것이 없는 것 같고, 또 그것이 현실일 수도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생태를 보존하는 것이 사회주의를 보존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3) 문제점
가. 우선 생태사회주의에 따르면 자연은 노동력과 비슷하게 착취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연과 노동력은 몇 가지 다른 점이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대부분의 자원은 영구적이지 않으며 어떤 형태로든지 고갈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제대로 된 생태사회주의적인 정책이 펼쳐지려면 자연의 착취를 막아야 하는데 그럴 경우에 삶의 질이 급격히 낮아지게 된다. 지속가능한 정도로만 유지하겠다고 해도 석유와 같은 자원은 "지속"될 수 없으며 대체원을 찾아야 한다. 따라서 인간이 이용하는 모든 자원이 지속가능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이상적인 꿈인 것 같다.
나. 생태사회주의 뿐만 아니라 생태를 다루는 모든 이론의 문제점 중 하나는 생태와 인간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에 있다. 인간중심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생태사회주의와 사회주의의 구분은 희미해진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사회주의적 이상을 이루기 위해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에 따르면 사회주의적 이상과 관련이 없는 몇몇 형태의 자연파괴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자면 이론적으로 봤을 때 생태사회주의자들에게 오존층 파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자연중심적 측면에서 생태사회주의의 "사회주의"적인 면은 두각을 나타내기 힘들게 된다. 자연중심주의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분으로 보고, 사회주의적 이상을 통해 자연을 최대한 "자연적"으로 놔두려고 한다. 하지만 "자연적"인 것은 무엇이며 인간이 자연의 수호자가 아닌 일부분으로서 어떠한 역할을 해야하는지 분명치 않다.
4) 결론
이렇게 생태사회주의를 전반적으로 설명하게 되었다. 솔직히 생태사회주의라는 이론 자체는 매력적이다. 환경정의(environmental justice) 측면에서 보았을 때에도 환경파괴는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점들을 동반한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 및 방지하기 위해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은 귀를 솔깃하게 한다. 하지만 사실상 생태사회주의라는 이론을 따랐을 때 환경이 정말로 개선될 지는 의문이다. 사회주의가 항상 대면해야 했던 "동기부여"의 문제가 가장 돋보인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를 위해서라도 일할 동기를 부여하지 못하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환경을 위해 일할 동기를 부여할 수 있을까? 물론 공산주의처럼 붕괴하지는 않겠지만 사상적인 동기 없이는 환경을 위해 일할 동기가 없을 것이고, 사상적인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사회주의는 실패한 이념이 아니며 지금도 사회민주주의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우리 사회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복지 측면에서 사회주의는 자유주의에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주고 있다. 따라서 환경 문제에 있어서도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의 공통분모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환경이 파괴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정치적인 기반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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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9/08/18 20:49 | Thoughts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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