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에 관한 다섯 우화

『자유주의와 식인종』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스티븐 룩스(Steven Lukes)는 명백히 자유주의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흔히 자유주의적이라고 여겨지는 의식과는 무언가 다른 느낌이 든다. 일부 학자들에 따르면 룩스가 주장하는 자유주의는 "계몽된 자유주의," 즉 이성을 바탕으로 상대방과의 대화를 통하여 최적점을 찾아가는 형태를 띄고 있다. 이러한 해석만 보면 소위 말하는 신계몽주의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번 포스트에서는 룩스의 "인권에 관한 다섯 우화"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전반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룩스의 주장에 따르면 인권은 보편적이며 그 누구도 인권의 기본적인 원리를 부정할 수는 없다. 이러한 전제조건을 두고 룩스는 두 가지의 질문을 던진다. 첫째, 인권을 수용하지 않는 사회는 어떨까? 둘째, 인권을 심각하게 수용하는 사회는 어떨까?

1. 인권을 수용하지 않는 사회들

가. 공리국 (Utilitaria)
공리주의자들은 말 그대로 "효용(utility)"을 추구한다. 룩스가 말하는 "효용"이란 벤담의 공리주의에 더 가까우며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뜻한다. 또, 경제학에서 볼 수 있듯이 실용은 직선상에 놓여 있어서 "최대의 행복"은 "최소의 불행"과 일치한다.
아무튼 이런 사회에서는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국민의 실용이 법일 것"이다. 따라서 기술관료(technocrat), 행정관료(bureaucrat), 그리고 판사(judge)와 같이 국민의 실용에 관련된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가장 힘이 셀 수밖에 없다. 문제점이 있다면 그 누구도 "효용"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상적인 공리국 국민들은 다른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 본인의 행복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을 것이다.

나. 공동체국 (Communitaria)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사회이다. 국민들은 공공심이 강하고 집단을 위한 목적을 추구한다. 하지만 단순한 "정"에 의해 뭉쳐진 사회는 아니다. 오히려 공동체국에서는 집단이라는 구성원 없이 개인을 정의하기는 불가능하다. 언젠가부터는 이 공동체국에 이민자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공동체국 안에 수많은 작은 공동체들이 생기게 되었다. 흔히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이라고 불리는 형태를 띄게 되었는데 이에 따라 몇 가지 문제들이 생기게 되었다. 첫째로 "포함-배제의 문제(inclusion-exclusion problem)"를 들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어떠한 작은 공동체들이 공동체국의 일부분이 될 수 있을지의 문제이다. 둘째로 "상대주의의 문제 (relativism problem)"를 들 수 있다. 작은 공동체들의 사상이나 행동들이 다른 공동체들과 호환성이 없는 경우이다. 셋째로 "일탈자의 문제 (deviant problem)"를 들 수 있다. 공동체들 간의 갈등을 피하고 싶어서 공동체들로부터 일탈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들이 진정한 공동체국의 국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 프롤레타리아국 (Proletaria)
말 그대로 이상적인 공산주의국가이다. 노동의 분업이 없어졌으며 엥겔즈가 말한대로 사람대신 "사물의 행정 (administration of things)"과 "생산과정의 행위 (conduct of processes of production)"가 지배를 하는 세상이다. 이러한 이상에 따르면 모든 것이 행복해 보이고 사람은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으며 인권이라는 것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문제점이 있다면 바로 너무 이상적이라는 것이다.

2. 인권을 심각하게 수용하는 사회들

가. 자유국 (Libertaria)
이 사회에서는 "소유의 권리"를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이 권리는 본인을 소유하는 것부터 시작되며 재능이나 노동 등 자유주의에서 흔히 말하는 자유에 대한 권리르 보장받는다. 또 모두들 평등한 기회를 갖고 있는데, 여기서 "평등한 기회"란 것은 특정한 개인 혹은 집단을 차별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어떠한 개인 혹은 집단이 재정적으로 혹은 다른 어떤 방면에서 유리한 입장에 놓여있다면 그것을 존중해야 하며 부의 분배란 찾아볼 수 없다. 다시 말해서 국민들 모두 경주에서 뛸 자격이 주어지는데 승자에게는 승자로서의 자유가 주어지고 패자에게는 패자로서의 자유(?)가 주어지는 사회이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경제적인 자유가 너무 강조된 나머지 양극화가 심해질 것임이 분명하다.

나. 평등국 (Egalitaria)
이 사회에서는 각 일원의 가치를 존중하다. 따라서 기본적인 자유, 법치, 평등한 기회 등이 주어진다. 또한, 모두의 평등을 추구하기 때문에 선천적인 불평등적인 요소들을 없애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가 정말 가능할까? 몇 가지 측면에서 보면 불가능하게 보인다. 첫째로 "자유주의적 제한 (libertarian constraint)"이 있다. 다시 말해서 경제 발전을 위해서 효율을 추구해야 하는데 효율과 평등을 동시에 추구하기란 어렵기 짝이 없다.  둘째로 "공동체주의적 제한(communitarian constraint)"이 있다. 이것은 문화적인 측면에서 부각되는데 각 일원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각 일원이 속해 있는 공동체를 존중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각 공동체가 다른 삶의 방식을 추구하고 있을 때 이 모든 사람들의 평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또, 공동체가 개인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 상식이 된 요즘, 공동체와 개인의 존중이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러한 사고실험을 한 후 룩스는 평등주의로 눈을 돌린다. 결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사람에 대한 평등한 존중이 있어야만 인권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권의 고원 (plateau of human rights)"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러한 고원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by 아프리오리 | 2009/08/19 16:56 | Thoughts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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