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8월 21일
대심문관 (The Grand Inquisitor)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중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는 단연 "대심문관"이라고 이름 지어진 장이 아닐까? 프로이드가 극찬한 소설인만큼 "대심문관"에 대한 해석도 다양하다. 표면상으로는 로마 가톨릭교의 비판이고, 더 깊이 들어가면 신으로부터 받은 자유의지에 대한 고찰이며, 이 밖에도 다른 사회적, 종교적 또는 철학적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
우선 대심문관의 주장을 살펴보도록 하자.
1. 인간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가) 자유를 수용할 수 있는 자와 나) 자유를 수용하지 못하는 자. 이에 덧붙여 대심문관은 역사와 자신의 경험에 따르면 전자에 해당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며 인간의 대다수가 후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자유를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몇 가지 공유하는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 도덕적인 판단을 하기 위한 책임감을 지기가 불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관습으로부터의 이탈에 대한 배재성이라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자유를 수용할 수 있는지와 없는지를 구분하는 것은 선천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2. 따라서 자유를 수용하지 못하는 인류의 대다수를 위한 인도주의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자유를 수용하지 못하고 자유에 따르는 책임감을 거부하는 사람들, 즉 자유로부터 구속을 받는 사람들을 위해 대심문관과 같은 사람들이 그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여기서 재밌는 것은 대심문관에 따르면 이 "십자가"가 결코 부담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을 "자유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의식주를 제공해주고, 모든이들을 위한 도덕적 판단을 내려주고, 세상의 보편성을 위해 노력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3. 이런 주장을 장황하게 펼친 후 대심문관은 "성자(The Son)"에게 더이상 이 세상에 올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즉, 사람들로 하여금 자유라는 십자가를 지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대심문관은 성자의 약점을 꿰둟고 있다고 하는데 바로 여태까지 기록되어진 "신(The God)"의 언행에 벗어나는 언행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심문관"이라는 장에서 성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포로(captive)라고 표현된다. 그리고 대심문관의 질책이 끝나자 아무 말도 없이 대심문관의 입술을 맞춘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구속"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하겠다. 대심문관에 따르면 세상에는 두가지의 구속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자유를 수용하려면 책임감이 따르므로 "자유의 구속"이 있고, 또 "자유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되어 행복을 느끼려면 진정한 자유를 느끼지 못하므로 "행복의 구속"이 있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문제는 평상시에 많이 접하고 들을 수 있는 문제이다. 하지만 조금 더 살펴보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먼저 "자유의 구속"을 생각해보자. 우선 정말 자유를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은 자유를 즐길 것이고, 따라서 "자유의 구속"은 모순적이라고 말할 것이다. 또, "행복의 구속"도 마찬가지이다. 자유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은 행복을 구속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자유의 구속"이라고 하는 것은 자유를 수용할 수 없는 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는 사람들을 보고 하는 말이 되고, "행복의 구속"이라고 하는 것은 반대로 자유를 수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고 하는 말이다. 즉, 대심문관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구도는 흑백논리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구조에 따르면 대심문관이 주장한대로 보편성을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여태까지 우리가 생각해보지 않은 점이 있다. 바로 자유를 수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가 과연 "선천적인 성질"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이에 대한 의견은 여러가지 있을수 있지만 필자는 "선천적인 성질"에 의해 사람의 성질이 결정된다는 것이 완벽히 옳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철학자의 가정은 우리는 "진실"을 추구함으로서 "자유"를 얻을 수 있고 "자유"를 통해 "진실"에 조금 더 가까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자유를 수용하지 못하는 자라도 본인의 결정을 통해 자유를 수용하게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성자(The son)"의 입맞춤은 이 세상을 자유와 진실을 통해 꿀 수 있다는 확신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우선 대심문관의 주장을 살펴보도록 하자.
1. 인간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가) 자유를 수용할 수 있는 자와 나) 자유를 수용하지 못하는 자. 이에 덧붙여 대심문관은 역사와 자신의 경험에 따르면 전자에 해당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며 인간의 대다수가 후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자유를 수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몇 가지 공유하는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 도덕적인 판단을 하기 위한 책임감을 지기가 불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관습으로부터의 이탈에 대한 배재성이라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자유를 수용할 수 있는지와 없는지를 구분하는 것은 선천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2. 따라서 자유를 수용하지 못하는 인류의 대다수를 위한 인도주의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자유를 수용하지 못하고 자유에 따르는 책임감을 거부하는 사람들, 즉 자유로부터 구속을 받는 사람들을 위해 대심문관과 같은 사람들이 그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여기서 재밌는 것은 대심문관에 따르면 이 "십자가"가 결코 부담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을 "자유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의식주를 제공해주고, 모든이들을 위한 도덕적 판단을 내려주고, 세상의 보편성을 위해 노력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3. 이런 주장을 장황하게 펼친 후 대심문관은 "성자(The Son)"에게 더이상 이 세상에 올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즉, 사람들로 하여금 자유라는 십자가를 지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대심문관은 성자의 약점을 꿰둟고 있다고 하는데 바로 여태까지 기록되어진 "신(The God)"의 언행에 벗어나는 언행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심문관"이라는 장에서 성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포로(captive)라고 표현된다. 그리고 대심문관의 질책이 끝나자 아무 말도 없이 대심문관의 입술을 맞춘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구속"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하겠다. 대심문관에 따르면 세상에는 두가지의 구속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자유를 수용하려면 책임감이 따르므로 "자유의 구속"이 있고, 또 "자유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되어 행복을 느끼려면 진정한 자유를 느끼지 못하므로 "행복의 구속"이 있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문제는 평상시에 많이 접하고 들을 수 있는 문제이다. 하지만 조금 더 살펴보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먼저 "자유의 구속"을 생각해보자. 우선 정말 자유를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은 자유를 즐길 것이고, 따라서 "자유의 구속"은 모순적이라고 말할 것이다. 또, "행복의 구속"도 마찬가지이다. 자유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은 행복을 구속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자유의 구속"이라고 하는 것은 자유를 수용할 수 없는 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는 사람들을 보고 하는 말이 되고, "행복의 구속"이라고 하는 것은 반대로 자유를 수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고 하는 말이다. 즉, 대심문관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구도는 흑백논리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구조에 따르면 대심문관이 주장한대로 보편성을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여태까지 우리가 생각해보지 않은 점이 있다. 바로 자유를 수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가 과연 "선천적인 성질"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이에 대한 의견은 여러가지 있을수 있지만 필자는 "선천적인 성질"에 의해 사람의 성질이 결정된다는 것이 완벽히 옳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철학자의 가정은 우리는 "진실"을 추구함으로서 "자유"를 얻을 수 있고 "자유"를 통해 "진실"에 조금 더 가까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자유를 수용하지 못하는 자라도 본인의 결정을 통해 자유를 수용하게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성자(The son)"의 입맞춤은 이 세상을 자유와 진실을 통해 꿀 수 있다는 확신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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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9/08/21 10:30 | Thoughts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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